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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BFA와 한국 부부재산약정, 닮은 듯 다른 ‘혼전계약’

결혼을 앞둔 당사자들이 재산 문제를 미리 정한다는 점에서 호주의 ‘구속력 있는 재정약정’과 한국의 ‘부부재산약정’은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시기와 변호사의 관여, 제3자에 대한 효력, 이혼 시 재산분할에 미치는 영향은 크게 다르다.

호주의 BFA는 ‘Binding Financial Agreement’의 약칭이다. 호주 연방 가족법에 따라 부부나 사실혼 관계 당사자가 재산과 채무, 배우자 부양, 연금 관련 사항 등을 약정할 수 있는 제도다.

가장 큰 특징은 작성 시기가 혼인 전으로 제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혼인 전은 물론 혼인 중, 별거 또는 이혼 이후에도 체결할 수 있다. 사실혼 관계도 관계 시작 전과 관계 유지 중, 관계 종료 후에 각각 약정을 맺을 수 있다.

이에 비해 한국 민법상 부부재산약정은 원칙적으로 혼인 성립 전에 체결해야 한다. 혼인신고가 이뤄진 뒤에는 새로 부부재산약정을 체결해 민법상 약정재산제를 선택할 수 없다.

한국에서는 별도의 약정이 없으면 부부별산제가 적용된다. 혼인 전부터 각자가 보유한 재산과 혼인 중 자기 명의로 취득한 재산은 원칙적으로 특유재산이 된다. 누구에게 속하는지 분명하지 않은 재산은 부부 공유로 추정한다.

부부재산약정에는 부동산과 예금, 주식, 사업체 등 재산의 소유와 관리 방법, 생활비 부담, 재산에서 발생하는 수익의 귀속 등을 정할 수 있다. 다만 부부재산약정을 상속이나 제3자에게 주장하려면 혼인 성립 전 등기가 필요하다. 당사자 사이의 약정과 외부에 대한 대항요건을 구분해야 한다는 의미다.

혼인 중 약정 내용을 변경하는 것도 자유롭지 않다. 정당한 사유가 있을 때 법원의 허가를 받아 변경할 수 있으며, 제3자에게 변경 내용을 주장하려면 등기 절차도 갖춰야 한다.

호주 BFA는 형식 요건이 한층 엄격하다. 단순히 부부가 같은 문서에 서명했다고 해서 자동으로 구속력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원칙적으로 각 당사자가 서로 독립된 변호사에게 약정의 법적 효과와 체결에 따른 장단점에 관한 조언을 받아야 한다. 변호사가 조언을 제공했다는 확인 절차도 필요하다.

같은 변호사가 양측을 동시에 대리하는 방식은 독립적인 법률 조언이라는 요건과 충돌할 수 있다. 자산과 부채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거나 상대방에게 서명을 강요한 경우에도 분쟁의 원인이 된다.

양국 제도의 차이는 이혼할 때 더욱 뚜렷해진다.

호주에서 유효하게 성립한 BFA가 재산 문제를 다루고 있다면 법원은 원칙적으로 해당 약정이 정한 범위에 관해 일반적인 재산조정 명령을 하지 않는다. 따라서 BFA는 이혼 후 재산 정리의 불확실성을 줄이는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계약서 제목에 BFA라고 적었다고 해서 반드시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사기나 중대한 재산 은폐, 강박, 부당한 영향력, 비양심적 행위, 계약의 무효 또는 집행 불가능성 등이 인정되면 법원이 약정을 취소할 수 있다. 자녀와 관련해 중대한 사정 변경이 발생해 당사자가 심각한 곤란을 겪게 되는 경우도 취소 사유가 될 수 있다.

한국의 부부재산약정은 혼인생활 중 재산의 소유·관리 관계를 정하는 데 중심이 있다. 이혼할 경우 적용되는 재산분할청구권과 완전히 같은 제도는 아니다.

한국 민법상 재산분할은 혼인 중 부부가 협력해 형성하거나 유지한 실질적인 공동재산을 청산하고, 이혼 후 생활을 일정 부분 고려하는 제도다. 부동산이나 예금이 한쪽 명의로 돼 있더라도 다른 배우자의 기여가 인정되면 재산분할 대상이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혼인 전에 작성한 부부재산약정만으로 장래의 재산분할청구권을 전면적으로 포기시키기는 어렵다. 아직 이혼이 구체화하지 않은 단계에서 미리 재산분할청구권을 포기하도록 한 약정은 그 효력이 인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부부재산약정에 적힌 재산의 출처와 소유관계, 관리 방식 등은 이혼소송에서 재산의 성격이나 당사자의 의사를 판단하는 자료가 될 수 있다. 약정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법원의 재산분할 판단이 자동으로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

반면 혼인관계가 파탄에 이르러 이혼과 재산분할이 구체적으로 논의되는 단계에서 당사자가 재산의 범위와 분할 방법을 명확히 합의했다면 이는 별도의 재산분할 협의로 인정될 여지가 있다. 단순한 혼전 약정과 이혼을 전제로 한 구체적인 재산분할 합의는 법적 성격이 다르다.

호주 BFA는 요건을 충족하면 법원의 재산조정 권한을 상당 부분 배제하는 계약형 제도다. 한국의 부부재산약정은 혼인 중 재산관계를 미리 정하고 공시하는 제도에 가깝다.

국제결혼이나 호주와 한국에 재산을 나눠 보유한 부부라면 한 국가에서 작성한 계약이 다른 국가에서도 그대로 집행될 것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어느 나라 법원이 이혼과 재산분할을 심리하는지, 재산이 어느 국가에 있는지, 약정을 체결할 당시 각국의 요건을 충족했는지를 따로 검토해야 한다.

결국 호주의 BFA를 한국의 부부재산약정과 같은 제도로 이해하면 이혼 시 예상과 다른 결과를 맞을 수 있다. 호주에서는 독립적인 법률 조언과 재산 공개가 핵심이고, 한국에서는 혼인 전 약정과 등기, 이혼 단계의 재산분할 합의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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