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역내에 묶여 있는 러시아 동결 자산을 활용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법적 근거를 담은 제안서를 공식 발표했다. 자산 대부분이 위치한 벨기에가 법적 위험을 이유로 강하게 반대하고 있으나, EU 집행위원회는 가중다수결을 통해 방안을 추진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3일 브뤼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향후 2년 동안 우크라이나 재정 수요의 3분의 2를 충당하기 위한 총 900억 유로 규모의 지원 계획을 발표했다. 나머지 재원은 국제사회의 기여로 조달될 전망이다. 그는 이 자금이 EU 공동 차입 또는 동결된 러시아 중앙은행 자산을 기반으로 한 ‘배상금 대출’ 방식으로 마련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구상은 미국이 종전 협상 압박을 강화하는 가운데 우크라이나가 협상에서 주도권을 확보하도록 지원하려는 목적이 담겼다고 집행위는 강조했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압박이야말로 크렘린이 이해하는 언어”라며 “푸틴의 전쟁 비용을 높일 수 있는 조치”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벨기에는 EU 전체 동결 자산 중 상당액이 예치된 중앙예탁기관 유로클리어를 관리하고 있어 법적 책임과 러시아의 보복 가능성을 우려하며 완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바르트 더 베버르 벨기에 총리는 집행위가 회원국의 동의 없이 민간기관의 자산을 활용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막심 프레보 외무장관 역시 “우려가 해소되지 않았다”며 대출 방식 대신 시장에서 채권 발행을 통한 조달을 요구하고 있다.
EU 집행위는 벨기에의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번 제안에 ‘회원국 보증’을 포함했다고 설명했다. 발디스 돔브로우스키스 경제담당 집행위원은 “법적 위험이 특정 국가에 집중되지 않도록 설계됐다”며 “국제법과 EU법에 완전히 부합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자금 제공 시 ‘몰수’가 아니라 ‘대출’이므로 러시아 자산을 직접 취득하는 것은 아니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EU는 벨기에 외에도 프랑스, 독일, 스웨덴 등지에 묶여 있는 약 250억 유로의 자산을 함께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기존 논의되던 1천400억 유로 규모에서 크게 축소된 이번 제안에 대해 집행위는 “총 2천100억 유로 중 필요 시 추가 인출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벨기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다수 회원국이 찬성하는 만큼, 오는 18∼19일 열리는 EU 정상회의에서 집행위 안이 관철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만장일치가 아닌 가중다수결 방식으로도 의결이 가능하다고 밝히며 정치적 여지를 남겼다.
러시아는 자산 사용 시 “절도 행위로 간주하겠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EU 내부 논의가 향후 국제적 법적 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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