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Post

재외국민 뉴스채널 인터넷신문등록번호 경기 아 54541

Advertisement

권력과 피의 상징, 런던탑…

왕도 신하도 역사의 심판을 받았다1540년 7월 28일, 잉글랜드 국왕 헨리 8세의 최측근이었던 토머스 크롬웰이 런던탑에서 참수형을 당했다. 왕권 강화를 이끌었던 정치가가 결국 자신이 섬기던 왕의 명령으로 생을 마감한 사건은 영국 정치사의 대표적인 권력 비극으로 꼽힌다.런던탑은 단순한 성채가 아니다. 정식 명칭은 ‘여왕 폐하의 왕궁이자 요새(Her Majesty’s Royal Palace and Fortress)’로, 11세기 정복왕 윌리엄이 잉글랜드 정복 직후 권력의 상징으로 건설을 시작했다. 대표 건축물인 화이트 타워는 1078년 완성됐으며 이후 약 900년 동안 왕궁, 요새, 감옥, 무기고, 조폐소, 보물창고, 동물원, 국가기록보관소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다.1100년경부터 정치범 수용시설로 사용되면서 런던탑은 ‘공포의 감옥’이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특히 16~17세기에는 왕권을 둘러싼 정치투쟁의 중심 무대였다.가장 유명한 희생자는 헨리 8세의 두 번째 왕비인 앤 불린이다. 그는 간통과 반역 혐의로 체포돼 1536년 런던탑에서 처형됐다. 이후 헨리 8세의 다섯 번째 왕비 캐서린 하워드 역시 같은 장소에서 생을 마감했다.토머스 크롬웰 역시 헨리 8세의 절대적 신임을 받으며 수도원 해산과 종교개혁을 주도했지만, 왕의 네 번째 결혼이 실패로 끝나면서 정치적 책임을 지고 반역죄로 체포됐다. 그는 런던탑에 수감된 뒤 1540년 7월 28일 처형됐다.런던탑에는 왕이 되지 못한 왕들도 갇혔다. 어린 국왕 에드워드 5세는 동생과 함께 이곳에 수감된 뒤 실종됐으며, 두 왕자의 운명은 지금도 영국 역사 최대의 미스터리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다.후일 여왕이 되는 엘리자베스 1세도 즉위 전 이복누나 메리 1세 치하에서 반역 혐의를 받아 런던탑에 갇혔다. 그는 석방된 뒤 왕위에 올라 영국 황금시대를 열었다.17세기 영국혁명기에도 런던탑은 정치의 중심이었다. 토머스 웬트워스과 윌리엄 로드는 의회와 국왕의 갈등 속에서 수감된 뒤 처형됐다. 또한 의회파 지도자였던 존 엘리엇은 이곳에서 옥사했다.런던탑에 갇혔던 인물은 왕비와 귀족만이 아니었다. 토머스 모어, 레이디 제인 그레이, 프랜시스 베이컨,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지도자 루돌프 헤스도 이곳에 수감됐다.198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런던탑은 현재 영국 왕실 보석을 전시하는 박물관이자 대표 관광지로 운영되고 있다. 인접한 타워 브리지와 함께 런던을 대표하는 명소로 꼽히며 매년 수백만 명이 찾는다.일본 근대문학의 거장 나쓰메 소세키는 수필 ‘런던탑’에서 “런던탑은 영국 역사를 응축한 고갱이”라며 “시간이 흘러도 피와 권력, 인간의 죄를 기억하는 장소”라고 묘사했다.오늘날 관광객들이 성벽 위를 거닐며 바라보는 런던탑은 아름다운 중세 건축물이지만, 그 돌담에는 왕과 왕비, 대신과 귀족, 정치인들의 피비린내 나는 권력 투쟁과 영국사의 굴곡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댓글 남기기

Korean Post에서 더 알아보기

지금 구독하여 계속 읽고 전체 아카이브에 액세스하세요.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