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필(JP) 전 국무총리는 한국 현대정치사에서 가장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 정치인으로 평가받는다. 박정희 정부 시절에는 ‘영원한 2인자’로 불렸고, 이후에는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이른바 ‘3김 시대’를 이끌며 한국 정치의 한 축을 담당했다.특히 1997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성사된 DJP연합은 한국 정치사에서 가장 극적인 정치적 결합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당시 김대중 후보와 김종필 후보는 이념적 차이가 뚜렷했지만 정권교체와 정치개혁이라는 목표 아래 손을 잡았다. 중도 좌파와 중도 우파 세력을 결집한 DJP연합은 결국 대선 승리로 이어졌고, 사상 첫 평화적 정권교체를 실현하는 계기가 됐다.윤은기 한국협업발전포럼 회장은 최근 공개한 회고문에서 2006년 김종필 전 총리와 나눈 대화를 소개하며 DJP연합의 배경을 전했다.윤 회장에 따르면 김 전 총리는 “김대중 후보만 내각제 개헌에 동의했다”며 연합의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대통령제의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내각제를 추진하려 했으며, 이를 위해 정치적 결단을 내렸다고 밝혔다.또한 DJP연합이 깨진 이유에 대해서는 내각제 약속 위반보다 대북정책에 대한 견해 차이가 더 큰 원인이었다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김종필 전 총리는 1961년 5·16 군사정변의 핵심 주역으로 중앙정보부 창설을 주도했고, 이후 한일국교 정상화, 월남 파병, 경부고속도로 건설, 새마을운동 등 국가적 현안 추진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그를 둘러싼 평가는 엇갈린다. 5·16 군사정변과 유신체제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다. 그러나 산업화와 경제발전 과정에서 그가 수행한 정치적 역할과 조정 능력에 대해서는 일정 부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김 전 총리는 정치인인 동시에 문화예술에 대한 조예도 깊었다. 서예와 그림, 문학, 바둑, 골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정치권에서는 보기 드문 다재다능한 인물로 알려졌다. 풍부한 인문학적 소양과 유머, 품격 있는 언행은 그를 기억하는 정치인들이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특징이다.지난 23일 국회의원회관에서는 김종필 전 총리 탄신 100주년 및 서거 8주년 기념행사가 열렸다. 여야 정치권 인사들이 참석해 고인의 정치적 유산과 국가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되새겼다.참석자들은 김 전 총리에 대해 “철학과 혜안을 갖춘 정치인”, “품격과 낭만을 지닌 지도자”, “통합과 조정의 정치인”이라고 평가했다.생전 김 전 총리가 남긴 “정치는 허업(虛業)이다”라는 말은 오늘날 극단적 대립이 심화된 정치 현실 속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운정(雲庭)이라는 호처럼 구름이 머무는 정원의 여유를 지녔던 김종필. 대한민국 현대사의 굵직한 고비마다 중심에 섰던 그의 정치적 족적은 지금도 한국 정치에 적지 않은 화두를 던지고 있다.
운정 김종필, 혜안과 품격으로 대한민국 현대사를 이끈 풍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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