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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의 적’이라는 위험한 언어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더 위협적이다.” 이 명제는 정치사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해 온 오래된 논리다. 이른바 ‘내부의 적(enemy within)’ 이론이다. 이 논리는 국가나 공동체가 위기에 처했다는 인식을 조성한 뒤, 그 원인을 외부가 아닌 내부 집단에 돌리는 방식으로 작동해 왔다. 문제는 이 언어가 거의 예외 없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방향으로 사용돼 왔다는 점이다.

20세기 유럽에서 이 논리는 극단적인 형태로 현실화됐다. 나치 독일은 유대인, 동성애자, 그리고 나치 이념에 동조하지 않는 정치세력을 ‘국가 내부에 숨어 있는 적’으로 규정했다. 이들은 민족 공동체의 순수성을 훼손하고 국가를 내부에서 붕괴시키는 존재로 묘사됐다. 이런 서사는 대중에게 공포와 불안을 심어주었고, 그 결과는 아우슈비츠로 상징되는 집단학살이었다.

비슷한 시기 소련에서도 다른 형태의 ‘내부의 적’이 만들어졌다. 부농, 종교인, 체제 비판 세력은 ‘계급의 적’이자 ‘인민의 적’이라는 이름으로 제거 대상이 됐다. 이 과정에서 대숙청과 모스크바 재판, 그리고 ‘굴락’이라 불린 강제노동수용소 체제가 확산됐다. 내부의 적을 상정함으로써 권력은 강화됐지만, 사회 전체는 공포와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

‘내부의 적’이라는 개념의 핵심은 단순하다. 복잡한 현실의 실패 원인을 특정 집단으로 환원시키는 것이다. 경제적 어려움, 사회적 갈등, 정책 실패는 구조적 문제나 권력의 한계가 아니라, 내부에 숨어 있는 누군가의 방해 때문이라는 설명으로 대체된다. 이 순간부터 책임은 사라지고, 비판은 배신이 된다.

이 논리가 특히 위험한 이유는 감정의 방향을 통제하기 때문이다. 불안은 증오로 전환되고, 증오는 폭력을 정당화한다. ‘정화’, ‘제거’, ‘숙청’ 같은 표현이 등장하는 것도 이 지점이다. 언어는 행동의 예고편이 된다. 역사에서 ‘내부의 적’이란 말이 실제 폭력으로 이어지지 않은 사례를 찾기 어려운 이유다.

민주주의 사회의 언어는 다르다. 실패의 원인을 토론하고, 권력을 비판하며, 소수 의견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내부의 적이라는 표현은 이 모든 과정을 단숨에 무력화한다. 논쟁은 필요 없고, 설득도 요구되지 않는다. 남는 것은 적대와 침묵뿐이다.

정치든 사회든, 공동체가 위기에 처했을 때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외부의 공격보다 내부를 향한 증오의 언어다. 역사는 반복해서 보여준다. 내부의 적을 만들어 단합을 강요하는 순간, 그 공동체는 이미 가장 위험한 길 위에 올라서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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