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 재개발을 둘러싼 종묘 ‘앙각 규제’ 논란이 확산되는 가운데, 도시계획 전문가들은 한국 특유의 규제가 과도하게 적용되고 있다며 합리적 기준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도시건축공동위원으로 활동 중인 김지엽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는 종묘 주변 개발을 둘러싼 최근 논쟁을 “흑백논리로 흐르는 불필요한 소모전”이라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현재 논란의 중심인 ‘수목선’·‘앙각’ 개념이 국제적 기준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해외에서 경관 규제는 일반적으로 ‘외부에서 문화재를 바라보는 최적 시야’를 기준으로 삼는데, 한국은 반대로 ‘문화재 내부에서 외부를 바라볼 때 보이는 각도’를 제한하도록 설계돼 왔다는 설명이다.
그는 “앙각 규제는 한국에서만 실질적 규칙으로 운영돼 왔다”고 말했다. “도심 내부에 위치한 종묘에서 남쪽을 바라볼 때 건물이 보이면 안 된다는 주장 자체가 지나치게 절대적이다. 종묘의 핵심 경관은 북측 정전이며, 남측은 이미 도심과 맞닿아 있어 경관 완화 방식을 찾는 게 현실적이다.”
또한 현재 논란이 된 4구역 봉쇄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구조적 문제도 지적했다. 인근 3구역 중심상업지역은 최대 200m 건축이 가능하고, 5-1·5-3구역 역시 170m 허가가 이미 난 상태다. 김 교수는 “4구역만 막아도 바로 뒤 고층이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 도심 스카이라인 관리체계는 구역별 규제 강도가 다르고, 종묘 일대는 다층적 허용고도 기준이 이미 설정돼 있어 단일 규제로 경관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문화재 보존과 도시 경쟁력의 균형을 놓고도 논쟁이 이어진다. 김 교수는 “무작정 높이는 것에 찬성하지 않지만, 사업성이 성립할 수 있을 정도의 용적률·허용 높이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몇 년간 건축비 상승과 금융비용 확대를 고려하면, 일정 수준 이상 규제 완화 없이는 민간 사업자가 사업에 참여하기 어렵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반면 보존 우선론자들은 충분한 재정착 모델을 마련하면 과도한 고층화 없이도 개발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일각에서는 이번 갈등이 지방선거 국면에서 정치적 소재로 급부상한 점도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종묘 내부 경관의 공공적 가치는 인정되지만, 시민 접근성이 낮아 사실상 관심권 밖에 놓여 있던 문화재가突 정치적 상징성으로 소비되고 있다는 비판이다. 서울시가 대법 판결을 존중하겠다고 밝힌 국가유산청이 하루 만에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를 공개 비판한 장면도 이 같은 맥락에서 논란이 됐다.
도시계획계에서는 문화재의 가치를 ‘박제화’하지 않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늘고 있다. 종묘와 남산을 연결하는 녹지축 조성, 특정 앙각 제한 대신 고도·디자인 조건을 종합적으로 조정하는 방식 등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런던 중심부에서 세인트폴 대성당 경관을 보존하면서도 고층 랜드마크인 ‘더 샤드’를 허용했던 사례도 자주 비교된다. 당시 영국은 건물의 형태·폭·비례 등을 조정해 시야 차단을 최소화하는 조건부 고층 허가 방식을 적용했다.
재개발의 필요성과 교통·상권 변화 예측 역시 단정적 판단이 어렵다는 평가다. 과거 서울 청계천 복원 당시에도 교통 혼잡 실패론이 강했으나, 실제 개통 이후 도심 교통망은 안정적으로 재조정됐다는 경험이 있다. 서울로7017 역시 초기 회의적 여론을 뒤집고 만리재 일대 상권 활성화에 긍정적 영향을 준 바 있다.
결국 종묘 재개발을 둘러싼 현재의 충돌은 “보존 vs 개발”의 이분법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복합 현안이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도시계획 전문가들은 문화재 가치 보존을 전제로 하되, 도심의 기능·경쟁력·사업성 등을 함께 고려하는 통합적 스카이라인 관리체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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