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광복 80주년을 맞아,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 그리고 민주화 운동의 주역이었던 서산(西山) 정석해(鄭錫海·1899~1996)를 돌아본다. 그는 3·1운동에서부터 유럽 유학, 해방 후 교육, 4·19혁명과 민주화 운동까지 한 세기를 관통하며 진리와 정의를 실천한 인물이다.
3·1운동과 독립선언서 배포
정석해는 1919년 연희전문학교 Y.M.C.A. 회장으로 있으면서 3·1 독립만세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그는 독립선언서를 인쇄해 경향 각지에 배포했고, 3·5 남대문역 시위를 주도했다. 이후 일제의 탄압을 피해 만주 안동현으로 건너가 김진제, 김동평 등과 함께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유럽에서 배우고, 일본을 거치지 않고 전한 철학
1920년 상하이에서 안창호, 이광수 등의 권유로 흥사단에 가입한 그는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났다. 이어 독일 뷔르츠부르크대학과 베를린대학에서 심리학과 자본주의론을 공부하고, 파리대학 철학과에서 사회학·경제학을 전공했다. 약 20년간의 유럽 유학을 통해 일본의 왜곡 없이 순수한 서양 철학과 학문을 국내에 전했다.
해방 후 교육과 민주화 운동
1939년 귀국 후 일제에 체포돼 일본과 한국에서 연금 생활을 했지만, 1945년 해방과 함께 연희전문학교 교수로 복귀해 철학·수학·물리·불어 등을 가르쳤다. 1960년 4·19혁명 당시 4·25 교수단 시위를 주도했고, 1970년대에는 민족통일촉진회와 민주회복국민회의 창립에 참여하며 독재에 맞섰다.
실천하는 지식인의 길
정석해는 학문을 단순 연구가 아닌 실천으로 여겼다. 그는 “공론적 이론보다 진리와 정의를 구현하는 실천이 철학”이라 믿었고, 삶으로 이를 증명했다. 주요 저서로 『진리와 그 주변』(1981), 논문 「학문과 진리의 문제」(1960), 「시간과 자유」(1968) 등이 있다.
광복 80주년의 오늘, 서산 정석해의 생애는 독립과 민주, 그리고 교육을 위해 헌신한 실천적 지식인의 모범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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