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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체제’ 끝낼 수 있을까? 대한민국의 미래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만장일치로 인용했다.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12일 국회 탄핵 가결 이후 약 4개월 만이다. 그 사이 헌정 질서는 미증유의 위기를 겪었다. 광장 정치가 장기화됐고, 국회는 사실상 기능을 멈췄다. 헌법재판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양쪽 진영으로부터 동시에 공격을 받았다. 서부지법에선 물리적 충돌이 벌어졌고, 사법부마저 그 충격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주요 헌정기관이 모두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지금의 헌법은 1987년 6월 항쟁 이후 직선제와 5년 단임제를 골자로 도입된 제10차 개헌 헌법이다. 그러나 37년이 흐른 지금, 한국 사회의 변화된 현실을 담아내기에 이 제도는 여러모로 낡았다는 지적이 지속돼왔다. 역대 정권들은 개헌을 공약했으나 임기 말 동력 부족으로 실현시키지 못했다. 이번에도 대통령 궐위 상황에서 보궐선거가 치러지겠지만, 그 절차를 반복하는 것만으로는 근본적 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IU(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의 ‘2024년 민주주의 지수’에서 한국은 ‘완전한 민주주의’에서 ‘결함 있는 민주주의’로 하락하며 32위에 그쳤다. 헌정의 안정성마저 흔들리는 가운데, 이제는 구조적 개혁이 필요하다는 진단이 힘을 얻는다.

장우영 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현행 대통령제는 승자독식 구조를 고착시키고, 당선 이후에도 초당파 정치를 할 수 없는 구조”라며 “지금이야말로 헌법 개정을 통해 리더십의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권력구조 개편, 실현 가능성은

비상계엄은 대통령의 권력 남용 사례로 헌재가 판단하면서, 제왕적 대통령제를 해체하고 권력 분산을 추진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졌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문제의 핵심이 단순한 권력구조보다 5년 단임제라는 설계의 근본적 결함에 있다고 본다. 이는 1987년 당시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었으며, 현재의 위기의 씨앗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조원빈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통령제는 본래 삼권분립을 전제로 하지만, 여소야대가 될 경우 행정부는 사실상 마비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임기를 4년 중임제로 바꾸고, 총선과 대선 주기를 맞춰야 분점 정부의 비효율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결선투표제 도입과 국회의원 선출에서 정당득표의 비례성을 높이는 방안도 함께 검토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장 교수는 대통령제를 유지할 경우, 행정부 내부에 권력의 견제 장치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부통령제 재도입을 제안하며 “책임총리제는 임명직이므로 실효성이 없고, 부통령은 국민이 선출하므로 대통령조차 해임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1공화국 당시 도입됐던 정부통령 동시 선거제를 현대적으로 변형해 적용하자는 구상이다.

제왕적 의회인가, 제왕적 대통령인가

헌재의 탄핵 인용 전날, 권영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개헌 추진 의사를 밝히며 “현행 헌법은 제왕적 대통령제가 아니라 제왕적 의회를 만든 헌법”이라고 비판했다. 야당이 다수당이 되는 순간, 대통령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는 주장이다.

일각에선 이러한 주장에 일정 부분 동의한다. 장 교수는 “지금의 국회는 대통령 견제 기능만 있고, 국회의원을 견제할 장치는 없다”며 “입법부 권한의 분산도 함께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조 교수는 “그렇다고 해도 한국 대통령이 가진 권한은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막강하다”고 선을 그었다. 예산 편성과 법안 발의, 감사원장 임명 등 대부분의 권한이 행정부 중심으로 쏠려 있다는 지적이다.

개헌, 이번에도 물거품?

헌법 개정의 당위는 분명하다. 그러나 조기대선이라는 급박한 정치 일정 속에서, 개헌 논의가 실현될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유력 대선 주자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개헌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점도 변수다. 그는 과거 개헌안을 제시한 바 있으나, 최근엔 관련 발언을 자제하고 있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교수는 “대선이 끝나면 정권과 지방권력까지 장악하게 되는 정당이 굳이 개헌에 나설 이유가 없다”고 평가했다. 그는 “결국 개헌은 이번 대선에서 군소 후보들의 승부수 카드로만 소모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이들은 임기를 단축하겠다는 제안을 내세우며, 차기 총선이 있는 2028년을 개헌 시점으로 제시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지금 헌정체제의 근본을 묻는 기로에 서 있다. ’87체제’는 과연 이번에는 끝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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