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출간된 『수퍼 모멘텀』은 한때 만년 언더독으로 불리던 하이닉스가 HBM을 통해 글로벌 반도체 강자로 도약하기까지의 과정을 다룬다. 책의 첫 문장은 “2002년 하이닉스가 마이크론에 넘어갔다면”이라는 가정으로 시작한다. 이 문장은 실제로 2001~2002년 진행됐던 하이닉스 매각 협상의 실체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당시 매각이 성사됐다면 오늘의 SK하이닉스는 존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2001년 3월, 당시 옥션 대표이사이자 인터넷기업협회 회장이던 이금룡 회장은 외환은행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외환은행은 IT 산업을 대표할 인물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은행은 2000년 5월 취임한 김경림 행장이 이끌고 있었고, 이사회 의장은 박영철 고려대 교수였다. 당시 외환은행은 구조조정과 정상화라는 중대한 과제를 안고 있었다.
2001년 12월 무렵, 정부는 외환은행에 하이닉스를 마이크론에 매각하라는 방침을 통보했다. 하이닉스는 2001년 3월 현대전자에서 사명을 변경했고, 같은 해 8월 현대그룹에서 분리돼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 관리 체제에 놓여 있었다. 메모리 반도체 가격 급락으로 재무 부담이 커졌지만, 외국 경쟁사에 매각하는 선택은 산업 전략 차원에서 논란이 컸다.
이사회에서는 매각 반대 의견이 강하게 제기됐다. 반도체 원천기술은 국가 핵심 자산이라는 점, 하이닉스가 이미 중국 메모리 시장에서 절반에 가까운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었다는 점, 반도체 산업이 극심한 경기 사이클을 갖는 구조적 특성을 지닌다는 점이 주요 근거였다. 당시 적자는 구조적 실패가 아니라 사이클 저점이라는 판단이었다.
그럼에도 정부의 압박은 지속됐다. 2002년 1월부터 하이닉스는 마이크론과 본격적인 협상에 들어갔고, 3월 초 최종 타결을 위해 김경림 행장이 직접 미국으로 향했다. 협상 과정에서 마이크론은 현금이 아닌 자사 주식으로 대가를 지급하겠다는 입장을 제시했다. 김 행장은 이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뜻을 밝혔고, 결국 협상은 결렬됐다.
이후 정부는 김경림 행장을 전격 경질했다. 임기를 1년 이상 남긴 상태였다. 하이닉스 매각 문제를 둘러싼 갈등 속에서 외환은행은 은행장을 교체해야 했다.
정부는 다시 시도했다. 채권단 대표를 한빛은행장 이덕훈으로 바꿔 2002년 4월 재차 협상에 나섰고, 4월 22일 마이크론과 최종 MOU를 체결해 귀국했다. 그러나 4월 30일 열린 하이닉스 이사회에서 협상안은 부결됐다. 하이닉스의 독자 생존을 택한 결정이었다.
이후 경영진 개편과 함께 채권 출자전환이 추진됐다. 채권은행들이 대회의실에 모여 격론을 벌이던 장면은 하이닉스의 생존이 결정되던 순간으로 남았다. 당시 정부의 영향력은 막강했고, 압박은 거셌다. 그럼에도 하이닉스는 해외 매각을 피했고, 이는 한국 산업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이 과정에서 김경림 전 외환은행장의 역할은 크게 평가된다. 은행장직을 걸고 불리한 협상을 거부한 선택은 이후 하이닉스의 재도약으로 이어졌다.
하이닉스 문제가 일단락된 뒤, 2002년 말부터는 외환은행 자체의 매각 문제가 불거졌다. 대상은 사모펀드 론스타였다. 이후 알려진 바에 따르면 론스타가 외환은행 인수에 관심을 가진 주요 이유 중 하나로 외환은행이 보유한 하이닉스 지분이 거론됐다. 외환은행은 결국 사모펀드에 매각됐고, 긴 후유증을 남겼다.
2002년의 선택은 단기 재무 논리가 아닌 산업의 미래를 기준으로 한 판단이었다. 그 결정이 없었다면, 오늘날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한국의 위상 역시 크게 달라졌을 가능성이 크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