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선 국회의원과 국무총리를 지낸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25일 별세했다. 향년 74세.
민주평통 등에 따르면 고인은 지난 23일 베트남 호찌민 출장 중 건강 이상을 보여 귀국 절차를 밟던 중 공항에서 호흡 곤란 증세로 현지 병원으로 이송됐다. 심근경색 진단을 받고 스텐트 시술을 받았으나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25일 오후 2시 48분 현지에서 숨졌다.
1952년 충남 청양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울 용산고를 졸업한 뒤 서울대에 진학했다. 유신 시절 학생운동에 참여해 민청학련 사건과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등으로 수감 생활을 겪었고, 서울 신림동에서 사회과학서점 ‘광장’을 운영하기도 했다.
정계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끌던 평민당에 입당하며 입문했다. 1988년 13대 총선에서 서울 관악을에 출마해 당선되며 국회에 입성했다. 당시 36세로 최연소 의원이었다. 이후 2008년 18대 총선을 제외하고 지역구에 7차례 출마해 모두 당선됐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공천 배제에 반발해 탈당한 뒤 세종시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며 정치적 존재감을 재확인했다.
대선 전략가로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1997년과 2002년 대선에서 기획을 맡아 승리를 이끌며 ‘킹메이커’로 불렸다. 김대중 정부 출범 후 1998년 교육부 장관에 임명돼 고교 평준화 확대와 학력고사 폐지, 수능 도입 등 교육개혁을 추진했다. 이 시기 학교를 다닌 학생들은 ‘이해찬 세대’로 불렸다.
2004년에는 노무현 정부에서 국무총리에 발탁됐다. 행정중심복합도시 세종시 설계를 주도하며 국정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해 ‘책임 총리’로 평가받았다. 이후 민주당 당대표로 2020년 총선을 지휘해 180석 압승을 이끌었고, 같은 해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에는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으로 임명돼 대북·통일 정책 자문 역할을 맡았다. 이 대통령은 임명 당시 고인을 두고 정치와 행정을 두루 경험한 원로로서 국정에 기여할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장례 일정과 빈소 등은 추후 유가족과 관계 기관 협의를 거쳐 공지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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