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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배우 김지미, 미국서 별세…한국 영화사 이끈 스타의 마지막

원로 배우 김지미가 10일 미국에서 85세 일기로 별세했다. 영화계에 따르면 김지미는 최근 대상포진 바이러스 감염 이후 건강이 악화된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1940년 충남 대덕군 출생인 김지미는 덕성여고 재학 중이던 1957년 김기영 감독에게 발탁돼 영화 ‘황혼열차’로 데뷔했다. 이듬해 멜로드라마 ‘별아 내 가슴에’로 단숨에 스타로 떠오르며 1960~70년대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배우로 자리잡았다. 당시 국내에서 압도적 존재감을 보이며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로 불렸다.

김지미는 ‘길소뜸’ ‘춘희’ ‘토지’ ‘을화’ 등 1990년대까지 700편 가까운 영화에 출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불나비’(1965)는 미스터리한 분위기의 여성을 연기하며 강렬한 이미지를 남긴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수상 경력도 방대하다. 백상예술대상, 청룡영화상, 대종상 등 주요 영화상을 수차례 받았으며 2019년에는 신영균예술문화재단이 시상하는 아름다운예술인상 공로예술인 부문을 수상했다.

1986년에는 영화사 지미필름을 설립해 ‘티켓’을 포함한 7편의 영화를 제작했다. 배급 분야에서도 눈에 띄는 활동을 펼쳐 ‘마지막 황제’ ‘로보캅’을 국내에 도입하는 데 관여하며 기획력과 안목을 인정받았다.

영화계 조직에서도 굵직한 역할을 했다. 1995년 한국영화인협회 이사장을 지냈고 1998년에는 스크린쿼터 사수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1999년에는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산업 현안 대응에 나섰다.

한편 김지미는 네 차례의 결혼과 이혼으로 대중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1958년 감독 홍성기와 결혼했다가 1962년 이혼했으며, 이후 배우 최무룡과의 간통 혐의 구속 사건은 당시 사회를 크게 흔들었다. 강효실에게 위자료를 지급한 뒤 최무룡과 재혼했지만 1969년 다시 갈라섰다. 이후 가수 나훈아와는 1976~1982년 사실혼 관계를 유지했다. 1991년 의사와 네 번째 결혼을 했으나 2002년 이혼했다.

김지미는 은퇴 후 미국 로스앤젤레스 인근에서 생활해 왔다. 한국영화인총연합회는 영화인장 준비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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