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코미디계의 거목 전유성이 9월 25일 오후 9시 5분, 전북대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76세. 그는 폐기흉(폐 공기 누출) 증세가 악화되면서 가족의 곁에서 생을 마감했다. 딸이 임종을 지킨 것으로 알려졌다.
장례는 ‘희극인장’으로 치러진다. 빈소는 서울 아산병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8일 오전 7시에 진행된다. 발인 후에는 KBS 신관 스튜디오 앞에서 노제가 거행되고, 유해는 고향인 전북 남원 인월면에서 수목장 형태로 안치된다.
전유성은 1949년생으로 1969년 TBC ‘쑈쑈쑈’ 방송 작가로 방송계에 입문했다. 이후 코미디언으로 전향해 ‘유머 1번지’, ‘쇼 비디오 자키’ 등 다양한 무대와 방송에서 활동했다. 그는 ‘개그맨’이라는 용어를 국내 최초로 사용한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무명 후배들에게 무대를 내어주고 기회를 주며 한국 코미디의 저변을 넓히는 데 앞장섰다.
특히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을 이끌며 한국 코미디를 세계 무대와 연결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조직위원회 측은 “전유성은 다양한 실험 무대를 통해 한국 코미디의 지평을 확장한 주역”이라고 평가했다.
그의 별세 소식에 연예계와 코미디계는 깊은 애도를 표하고 있다. 개그우먼 이경실은 “삶 자체가 멋지고 장했다”고 회고했으며, 조혜련은 “손에 쥐고 있던 십자가와 마지막 기도가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박준형은 “손은 가늘고 야위었지만 기백과 유머는 여전했다”고 전했다. 가수 양희은은 “1970년대 ‘청개구리’ 무대에서 처음 본 이후 55년의 인연을 이어왔다”고 고인을 기렸다.
코미디협회와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 조직위원회도 “한국 코미디의 기둥이자 빛나는 별을 잃었다”며 공식 추모문을 발표했다.
한 시대를 열고 후배들의 길을 터 준 거장이 떠났다. 전유성은 무대와 방송, 교육, 축제 조직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서 한국 코미디의 뿌리를 깊게 내린 인물이었다. 그는 생전에 “‘웃음’이 길게 남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이제 수많은 무대와 제자들의 웃음 속에서 전유성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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