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뭉치를 둘러싼 범죄 수사에서 가장 먼저 주목되는 것은 지폐를 묶은 띠지다. 은행 창구에서 현금을 인출하면 은행원 직인이 찍힌 띠지로 100장 단위 묶음을 만든다. 이 띠지에는 은행 지점명·출금 날짜·담당자 정보가 포함돼 있어 돈의 출처를 추적하는 데 결정적인 단서가 된다. 실제로 수사기관은 뭉칫돈을 압수했을 때 소유자가 묵비권을 행사하더라도 띠지를 분석해 돈의 정체를 밝히는 경우가 많다.
한나라당 돈봉투 사건
2012년 검찰 수사에서 ‘하나은행 띠지’는 핵심 증거였다. 고승덕 의원이 “받은 돈이 하나은행 띠지에 묶여 있었다”고 진술했고, 검찰은 박희태 당시 국회의장이 선거 직전 해당 은행 계좌에서 현금을 인출한 사실을 확인했다. 결국 박 전 의장은 기소돼 정치적 생명을 사실상 마감했다. 정치권 금품수수 수사에서 띠지가 ‘스모킹건’ 역할을 한 대표적 사례였다.
변명 무너뜨린 띠지
2018년 송도근 전 사천시장 사건에서도 띠지는 위력을 발휘했다. 측근이 “일본에서 환전한 돈”이라며 출처를 부인했으나, 띠지에는 경남 진주 지역 은행에서 인출된 사실이 적혀 있었다. 불과 석 달 전에 발행된 신권까지 포함돼 있었던 만큼 법원은 변명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실형 선고로 이어졌다.
유병언·신창원 사건 등에서도 등장
1999년 탈옥수 신창원의 은신처에서 발견된 1억8천만 원 현금, 2014년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별장에서 나온 8억 원대 현금 역시 띠지 분석을 통해 범죄수익과 도피자금 여부가 밝혀졌다. 최근 울산 아파트 화단에서 발견된 돈다발도 띠지에 적힌 날짜와 은행 직인을 추적해 주인을 특정, 반환됐다.
‘관봉권’은 권력형 비리 단서
특히 한국은행이 직접 묶은 신권 띠지인 ‘관봉권’은 일반적으로 민간에 유통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피의자 주거지 등에서 관봉권이 발견될 경우, 청와대나 국정원 등 국가 예산의 불법 사용 의혹으로 번지곤 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에서 장진수 전 주무관에게 전달된 5천만 원 돈다발이 대표적이다. 당시 현금은 한국은행 관봉권에 묶인 신권이었고, 특수활동비 유용 의혹으로 확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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