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Post

재외국민 뉴스채널 인터넷신문등록번호 경기 아 54541

Advertisement

선명한 깃발과 명분의 연대, 일본 정치가 던진 민주주의의 시험

2026년 일본 정계의 격변은 단순한 권력 재편을 넘어 민주주의의 본질을 가늠하는 시험대로 떠올랐다. 이는 어느 세력이 더 많은 의석을 확보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각 정당이 자신의 정체성을 얼마나 분명히 드러내고 국민 앞에 책임 있게 선택을 요구하느냐의 문제다. 공자가 말한 정명(正名), 즉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한다(君君臣臣)’는 정치의 기본 원리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보수는 보수의 가치로, 진보는 진보의 비전으로 경쟁할 때 민주주의는 비로소 건강해진다.

동시에 정치란 홀로 완결될 수 없는 영역이다. 생존과 국정 운영을 위해 손을 맞잡는 연대는 불가피하지만, 그 결합에는 반드시 시대를 관통하는 명분이 뒷받침돼야 한다. 다카이치 정권의 강경 우향과 이에 맞선 야권의 결집은 ‘선명한 정체성’과 ‘명분 있는 연대’라는 민주주의의 두 축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정당 정치의 출발점은 유권자에게 흐릿한 타협이 아니라 명확한 선택지를 제시하는 데 있다. 그런 점에서 다카이치 총리가 공명당과의 중도적 균형을 벗어나 이념적으로 가까운 유신회와 손을 잡은 선택은 정치적 논란을 떠나 민주주의의 원칙과 맞닿아 있다. 그는 자신의 우파적 노선을 숨기지 않고 ‘쾌도난마(快刀亂麻)’처럼 정체성을 분명히 했다. 민주주의는 책임의 정치다. 국민은 각 정당의 노선과 리더십을 평가하고, 그 선택이 옳았는지 여부에 따라 권력을 부여하거나 회수한다. 공이 있으면 상을 주고 죄가 있으면 벌을 주는 신상필벌(信賞必罰)의 원칙은 이 과정에서 비로소 작동한다. 정당이 회색지대에 머물지 않고 색깔로 승부할 때, 유권자의 주권 역시 더욱 또렷해진다.

그러나 현실 정치에서 이상만으로 국정을 운영하기는 어렵다. 세력을 보존하고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합종연횡(合縱連橫)은 정치적 생존 전략이자 제도 민주주의의 일부다. 문제는 그 연대가 원칙과 명분을 갖추었느냐에 있다. 일본의 입헌민주당과 공명당은 이념적으로 큰 간극을 지닌 세력이다. 이들이 단순히 ‘자민당 반대’라는 부정의 논리만으로 뭉친다면 이는 정책적 대안이 아닌 일시적 야합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정신 아래 평화 헌법 수호, 중산층 복원 등 시대적 과제를 공동의 목표로 설정하고 이를 국민에게 설득해낸다면, 그 연대는 실질적인 대안 세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연대의 힘은 숫자가 아니라, 서로 다른 뿌리를 지닌 세력이 하나의 시대적 명분으로 결속할 때 발휘된다.

이 같은 일본 정치의 실험은 한국 정치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법고창신(法古創新), 즉 과거의 원칙을 본받되 새로운 해법을 창출해야 한다는 교훈이다. 정체성이 모호한 채 이합집산만 반복하는 정치가 지속된다면 유권자의 피로와 불신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정당은 먼저 스스로를 단련해 선명한 깃발을 세워야 한다. 이는 유권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책임이다. 동시에 홀로 감당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 앞에서는 명분 있는 연대를 통해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그 연대는 단순한 세력 확대가 아니라 집사광익(集思廣益), 즉 다양한 지혜를 모아 공동의 이익을 도출하는 실사구시의 선택이어야 한다. 뿌리가 다른 정치 세력일지라도 국민의 삶과 국가의 미래라는 대의(大義)로 관통할 때, 그 결합은 야합이 아닌 희망의 대안으로 전환될 수 있다.

선명한 정체성으로 치열하게 경쟁하되, 거대한 명분 앞에서는 유연하게 협력해 국민을 설득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신뢰를 잃은 정치를 복원하고 민주주의를 전진시키는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본질적인 길이다.

댓글 남기기

Korean Post에서 더 알아보기

지금 구독하여 계속 읽고 전체 아카이브에 액세스하세요.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