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일본의 갈등이 다시 한 번 세계 공급망의 급소를 건드리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외교적 충돌 이후, 양국은 군사나 외교가 아닌 ‘소재’라는 가장 현실적인 무기로 서로를 겨누는 국면에 들어섰다. 중국은 희토류를, 일본은 포토레지스트를 쥐고 있다. 칼은 이미 뽑혔고, 칼날은 산업의 심장을 향해 있다.
포토레지스트는 반도체 포토 리소그래피 공정에서 빛에 반응해 회로 패턴을 형성하는 감광성 수지다. 웨이퍼 위에 얇게 도포한 뒤 마스크를 씌워 노광하고, 현상과 식각을 거쳐 회로의 밑그림을 완성한다. 양성형과 음성형으로 나뉘며, EUV 공정에서는 13.5나노미터 파장을 견뎌야 한다. 3나노 이하 초미세 공정에서는 이 소재 하나가 수율과 직결된다.
이 포토레지스트 시장의 70% 이상, EUV용은 95%를 일본이 장악하고 있다. JSR, 신에츠화학, 도쿄오카공업 같은 기업들이 수십 년에 걸쳐 축적한 결과다. 중국이 반도체 굴기를 외쳐도 이 관문을 넘지 못하면 생산라인은 멈춘다. 과거 일본 기업의 공급 차질로 중국 최대 파운드리의 생산 효율이 급락한 사례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중국은 희토류로 압박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은 포토레지스트라는 정밀한 칼을 들고 있다. 거칠지만 강력한 희토류와 달리, 포토레지스트는 대체가 거의 불가능한 초정밀 기술이다. 국가 연구개발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수십 년간 민관이 함께 투자한 기술이 외교와 안보의 카드로 전환됐다.
한국은 이 장면을 남의 일처럼 볼 수 없다. 2019년 한일 무역 분쟁 당시 포토레지스트 국산화를 외쳤고 일정 부분 성과도 냈다. 그러나 AI 시대의 반도체는 과거와 차원이 다르다. EUV 이후 하이 NA, 멀티 패터닝, AI 칩 전용 공정으로 갈수록 소재와 부품의 난이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다.
AI는 알고리즘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결국 웨이퍼 위에 새겨진 물리적 회로가 AI의 두뇌다. 그 회로를 그리는 잉크가 포토레지스트다. 한국이 AI 강국을 말하려면 소프트웨어 인재 육성과 함께 이런 보이지 않는 핵심 소재에 대한 국가 차원의 장기 투자가 병행돼야 한다.
단기간 성과를 요구하는 연구개발 예산 구조로는 일본을 따라잡기 어렵다. 10년, 20년을 보고 실패를 허용하는 체계, 대학과 출연연, 기업이 함께 가는 생태계가 필요하다. 기술은 하루아침에 무기가 되지 않는다. 오늘의 연구실이 내일의 외교 카드가 된다. 중일 갈등은 그 냉정한 현실을 다시 한 번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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