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코딩 도구가 일상화되면서 개발 현장의 권력 구조가 빠르게 바뀌고 있다. 지금은 AI가 만든 코드를 사람이 검수하고, 설계를 보완하며, 전체 구조를 잡아주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경험 많은 시니어가 AI를 잘 활용할수록 생산성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다. 당장은 시니어가 우위에 설 수밖에 없다.
그러나 기술의 방향은 분명하다. AI는 더 정확하게 버그를 고치고, 더 일관된 코드 리뷰를 제공하며, 더 복잡한 아키텍처까지 제안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시니어나 주니어나 결과물을 뽑는 과정 자체는 거의 동일해진다. 동일한 퀄리티라면 비용이 더 낮은 주니어가 선택될 가능성이 커진다. 실무의 경쟁력이 평준화되는 순간, 주니어가 시장을 주도하는 역전 현상이 발생한다.
하지만 인간에게 남는 영역은 사라지지 않는다. 고객 신뢰를 쌓고, 이해관계자를 조율하고, 위기 상황에서 책임을 지고 판단하는 역량은 AI가 흉내내기 어려운 부분이다. 결국 사람의 가치는 실행 능력이 아니라 방향을 정하고 관계를 만들고 조직을 움직이는 능력으로 이동한다.
문제는 이 메타 역량이 원래 실무 경험의 부산물이라는 점이다. 프로젝트를 실패해봐야 위기 대응을 배운다. 팀과 마찰을 겪어봐야 조율이 가능해진다. 그런데 실무 자체가 AI로 대체되면 주니어는 이런 학습의 기회를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
여기에서 시니어의 역할이 재정의된다. 과거의 시니어가 ‘일을 더 잘하는 사람’이었다면, 앞으로의 시니어는 ‘사람을 키우는 사람’이 된다. 실무를 대신해주는 AI 옆에서, 주니어가 시장과 조직을 이해하고 결정 능력을 키우도록 도와주는 역할이 핵심 가치가 된다.
커리어 구조도 완전히 바뀐다. 예전에는 실무자에서 시니어 실무자로, 그다음 매니저로 올라갔다. 이제는 시작부터 매니저다. 주니어 매니저로 AI와 사람을 함께 관리하며 커리어를 출발한다. 이후 더 많은 AI 시스템과 더 많은 사람을 조율하는 시니어 매니저로 성장한다.
AI 시대의 커리어는 결국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가’로 정의된다. 실무의 시대가 저물고, 영향력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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