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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운상가 논란, 개발 명분 뒤에 가려진 진짜 쟁점

세운상가를 둘러싼 최근 논란의 중심에는 종묘의 경관 보전 문제가 놓여 있으나, 실제로는 세운지구 녹지화 구상과 그에 따른 주변 고층 개발 계획이 핵심이라는 지적이 거세지고 있다. 세운상가를 철거하고 대규모 녹지공원을 조성하겠다는 주장은 오래된 도시계획 논쟁의 연장선에 있다. 그러나 녹지 조성 이후 인근에 고층건물을 허용하는 방식이 ‘공공성’이라는 명분과 충돌한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세운상가는 처음부터 도심 구조와 충돌하는 방식으로 지어졌다. 종로~청계천을 중심축으로 500년 이어 온 도시축을 가로지르듯 길게 눕힌 형태의 주상복합 건물이 도심의 흐름을 끊어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완공 이후에도 상업적 활력 회복과 공간 재생을 위한 여러 시도가 있었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고, 그 과정에서 녹지 전환론이 새롭게 부상했다.

하지만 이 구상이 실제로 창경궁·종묘·남산을 이을 ‘도심 녹지축’을 완성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창경궁과 종묘는 이미 수년 전 율곡로 지하화(터널)로 연결됐지만, 실질적으로 통합된 공간으로 인식되기에는 교통량이 너무 크고 단절감도 여전하다. 세운 일대를 남산까지 녹지로 잇는다는 계획 역시 종로·을지로를 가로지르는 넓은 도로와 기존 건물 군집을 고려하면 실현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도시계획 전문가들이 이러한 한계를 모를 리 없는데도 비판을 자제하는 배경에 개발이익이 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경의선 숲길, 서울숲 사례처럼 녹지 조성 이후 주변 집값 상승과 대규모 개발이 뒤따른다는 것은 이미 경험된 패턴이다. 공원은 도심 공공자산이라기보다 인근 고급 주거지의 ‘앞마당’ 역할을 하고, 결과적으로 고층 아파트 개발과 집값 상승을 유발해 기존 지역 공동체를 밀어내는 구조가 반복돼 왔다.

세운상가를 녹지로 전환하고 종로4가 일대를 포함한 주변 지역에 고층 건물을 허용하는 계획은 사대문 안의 도시 경관을 복원하기보다 고급 주거지 개발을 위한 기반 마련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미 광화문 일대 사무용 빌딩은 공실률이 높아 사무 공간 확장의 수요도 부족한 상황이다. 이런 조건에서 세운지구에 들어설 가능성이 높은 것은 결국 고가 주거시설이라는 전망이 설득력을 얻는다.

문제는 이 같은 개발 구상 속에 오랜 기간 그 지역에서 삶을 이어온 소상공인과 서민에 대한 대책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세운지구 일대는 전자·기계 부품 상가와 공방, 숙박업소 등 다양한 생업 기반이 얽혀 있는 공간이다. 고층 개발이 진행될 경우 이들은 강제 이주에 가까운 퇴거 압력을 받게 되고, 지역의 생활권과 경제 생태계는 붕괴될 수밖에 없다. 도시재생이 아닌 대규모 철거식 개발이 가져온 부작용은 광주대단지 사건부터 최근 가든파이브 사례까지 반복돼 왔다.

세운4지구에 고층빌딩이 들어선다면 그 다음 타깃은 광장시장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전통시장·문화유산·지역 공동체가 결합되어 형성된 종로 특유의 도시정체성은 서울에서 유일하다시피 한 자산이다. 그러나 이 일대를 테헤란로식 고밀도 개발로 재편한다면 이러한 특성이 사라지고 획일화된 도심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

논란이 커지는 이유는 서울시가 제시하는 개발 비전이 기존 우려를 상쇄할 만한 구체성과 설득력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묘 일대를 지키기 위한 균형 잡힌 도시계획인지, 아니면 공원 조성을 미끼로 한 고가 개발 프로젝트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해소되지 않는 상황이다.

세운상가 논쟁은 단순히 건축물의 존치 여부가 아니라 도심의 공공성, 지역 공동체의 생존, 서울의 도시 비전이 맞닿아 있는 사안으로 확장되고 있다. 공원인가 개발인가라는 이분법이 아니라, 누구를 위한 도시인가라는 질문이 본질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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