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와 한국이 미국 빅테크 압박에 직면한 날, 두 지역은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유럽연합(EU)은 2014년부터 이어진 구글의 시장 지배력 남용을 근거로 누적 112억유로, 한화 약 15조80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반면 한국은 온라인플랫폼법 제정을 사실상 포기했다.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조차 “통상 협상 부담 때문에 추진하기 어렵다”고 인정하면서 규제의 동력이 꺾였다.
EU가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배경에는 산업 구조의 차이가 있다. 유럽은 제조업 비중이 큰 독일조차 비제조 기업 성장 기반이 두텁다. 독일 소프트웨어 기업 SAP, 프랑스의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영국 아스트라제네카 등은 각국 증시에서 시가총액 비중이 10% 안팎에 불과하다. 자본이 소수 대기업에 집중되지 않고 비교적 분산돼 있다는 얘기다.
한국은 정반대다. 삼성그룹과 SK그룹 두 재벌이 국내 증시 시가총액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한다. 스타트업이 제조업에 진입할 수 있는 길은 좁고, 플랫폼·소프트웨어 분야 창업조차 자본 배분에서 밀린다. 실제로 지난해 창업한 118만개 스타트업 중 제조업을 택한 기업은 2% 남짓이었다.
이 때문에 유망 스타트업들은 해외로 향한다. 쿠팡은 미국 뉴욕증시에서 상장했고, 라인은 일본 소프트뱅크 자회사로 편입됐다. 넥슨은 본사를 일본으로 옮겨 상장했고, 네이버웹툰은 지난해 나스닥에 입성했다. 국내 자본시장이 기술 기반 신생 기업을 수용하지 못하자 경제 자산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는 셈이다.
EU의 공격적 규제는 단순히 반미가 아니라 비제조 기업 육성과 시장 다양화를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반면 한국의 백기는 재벌 중심 구조와 통상 의존도가 겹친 결과다. 공정위 후보자의 말처럼 3년 전 플랫폼법을 도입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수 있지만, 사실상 골든타임은 30년 전에 지나갔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 없이 재벌 확장만 방치한 대가가 지금의 백기로 이어졌다. EU가 구글을 벌금으로 묶는 사이, 한국은 스타트업의 해외 탈출을 바라보며 또 한 번 기회를 놓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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