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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돕는 군대, 장병의 생명과 인권부터 지켜야 한다

태풍과 집중호우, 폭설, 산불 등 대규모 재난이 발생할 때 군 장병은 가장 먼저 현장에 투입되는 인력 가운데 하나다. 군은 인력과 장비를 단기간에 집중할 수 있어 실종자 수색과 도로 복구, 토사 제거, 방역 등 긴급한 작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아왔다.

농촌 일손 돕기와 해안 정화, 지역 환경정비 등 일반 대민봉사도 군과 지역사회의 관계를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 장병에게는 공동체 의식과 봉사의 의미를 체험하는 기회가 되고, 주민에게는 군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대민지원이라는 명분이 장병을 값싼 노동력처럼 동원하거나 위험한 현장에 보호조치 없이 투입하는 근거가 돼서는 안 된다. 군인의 기본 임무는 국방이며, 장병도 헌법과 법률에 따라 생명권과 안전권, 휴식권을 보장받아야 할 국민이다.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군 대민지원 인원은 2013년 6만5778명에서 2022년 1월부터 9월까지 101만7146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재난이 아닌 지방자치단체의 일반 사업이나 행사, 환경정비 등에 장병이 동원되는 사례까지 나타나면서 지원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낸 사건은 2023년 7월 경북 예천 수해 현장에서 발생한 해병대 채수근 상병 순직이었다. 채 상병은 7월 19일 실종자 수색 중 급류에 휩쓸려 숨졌다. 장병의 안전보다 임무 수행과 현장 성과를 앞세운 지휘체계가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인권위는 2024년 1월 일반 대민지원과 재난 대민지원을 구분하고, 재난대응 부대 지정과 지휘체계 단일화, 현장별 안전 매뉴얼 마련, 전문성 확보 등을 국방부에 권고했다. 국방부도 같은 해 8월 국방 재난관리 훈령을 개정해 풍수해와 대설, 산불, 감염병, 가축질병 등 재난 유형별 군 지원 범위를 구체화했다.

제도 개선이 현장에서 작동하려면 몇 가지 원칙이 확립돼야 한다. 지휘관은 투입 전에 위험성을 평가하고 작업에 필요한 보호장비와 전문인력을 확보해야 한다. 수중 수색과 산불 진화, 감염병 방역처럼 위험도가 높은 임무는 교육과 자격을 갖춘 인력을 중심으로 수행해야 한다. 기상 악화나 안전장비 부족 등 위험 요인이 확인되면 현장 지휘관과 장병이 작업 중지를 요청할 수 있어야 한다.

폭염과 혹한 속 작업에는 충분한 휴식과 급식, 식수, 의료 지원도 보장돼야 한다. 대민지원으로 훈련과 휴식 일정이 변경됐다면 합리적인 보상휴식도 뒤따라야 한다. 작업 중 다치거나 질병이 발생했을 때는 공무상 재해 인정과 치료, 보상 절차가 신속하게 진행돼야 한다.

지방자치단체 역시 군을 손쉽게 동원할 수 있는 무상 인력으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 자체 인력과 민간 전문업체로 해결할 수 있는 축제 지원이나 단순 환경정비, 특정 개인의 영리 활동과 연결된 작업까지 군에 요청하는 관행은 차단해야 한다. 긴급성·공공성·대체 불가능성을 기준으로 군 지원의 필요성을 먼저 심사해야 한다.

군의 대민봉사는 국가적 재난 앞에서 국민과 군이 연대하는 상징이다. 그러나 그 가치는 장병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길 때가 아니라 장병의 안전과 존엄을 지키면서 국민을 도울 때 완성된다. 국민을 보호하는 군대는 임무를 수행하는 장병부터 보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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