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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소원 도입…사법 정의 강화인가 ‘사실상 4심제’ 논란인가

국회가 헌법재판소법을 개정해 ‘재판소원’을 도입하면서 사법 체계 구조를 둘러싼 논쟁이 확산되고 있다. 법원의 확정판결까지 헌법소원의 대상에 포함되면서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간 권한 관계, 사법 정의 강화 여부, 사실상 4심제 논란이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재판소원은 법원의 확정판결로 인해 헌법상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판단될 경우 헌법재판소에 심판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기존에는 헌법소원의 대상에서 ‘법원의 재판’을 명시적으로 제외해 왔다. 1988년 헌법재판소 출범 당시 대법원이 사실상 4심제 도입과 최고법원 지위 훼손을 우려해 반대하면서 헌법재판소법에 ‘법원의 재판을 제외한다’는 조항이 유지돼 왔다.

그러나 2026년 2월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제도 변화가 이뤄졌다. 개정법은 헌법소원 대상에 법원의 재판을 포함해 재판소원을 허용했다. 다만 확정판결에 대해서만 가능하며 기본권 침해가 명백한 경우 등 제한된 사유가 있을 때만 청구할 수 있도록 했다.

개정법은 재판소원이 가능한 사유를 세 가지로 규정했다. 법원이 헌법재판소 결정 취지에 반하는 판결을 내린 경우, 적법 절차를 거치지 않은 재판으로 기본권이 침해된 경우, 헌법과 법률을 명백히 위반한 재판으로 기본권이 침해된 경우다.

재판소원 도입의 핵심 쟁점은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간 권한 관계다. 특히 ‘한정위헌’ 결정의 효력을 둘러싼 갈등이 대표적이다. 헌법재판소는 법률 조항 자체는 유지하면서 특정 해석만 위헌이라고 판단하는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그러나 대법원은 법률 해석권은 법원에 있다는 이유로 그동안 한정위헌 결정의 기속력을 인정하지 않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이 때문에 동일한 법률 해석을 두고 헌법재판소와 법원 사이에서 충돌하는 사례가 반복돼 왔다.

헌법학계 일부는 재판소원이 이러한 공백을 보완할 수 있다고 본다. 법원이 헌법에 반하는 방식으로 법률을 해석해 기본권을 침해하는 경우 이를 통제할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헌법 해석권이 헌법재판소에 있는 만큼 사법부 역시 헌법 통제 대상이 돼야 한다는 논리다.

행정권 통제 범위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현재는 행정처분으로 기본권이 침해될 경우 행정소송 등 다른 구제절차를 먼저 거쳐야 하며 대부분 사건은 대법원 확정판결로 끝난다. 그러나 재판소원이 도입되면 행정소송에서 패소한 뒤에도 헌법재판소 판단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반면 대법원은 재판소원이 사실상 4심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확정판결 이후에도 헌법소원이 가능해지면서 재판이 장기화되고 법적 안정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대법원은 재판소원 사건 상당수가 각하될 가능성이 높음에도 헌법재판소 심판 자원이 낭비되고 사법 시스템 전체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소송 당사자의 부담 증가도 주요 쟁점이다. 재판 단계가 사실상 늘어나면서 시간과 비용이 확대돼 ‘소송 지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다만 제도의 실제 영향은 헌법재판소의 사건 선별 방식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 많다. 헌법적 의미가 큰 사건을 중심으로 엄격하게 선별할 경우 사법 체계에 미치는 충격을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독일과 스페인 등 재판소원 제도를 운영하는 국가들도 엄격한 심사 기준을 통해 사건을 제한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재판소원이 모든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는 만능 장치가 될 것이라는 기대도, 곧바로 사법 시스템을 혼란에 빠뜨릴 것이라는 우려도 모두 과도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제도의 성패는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권한 충돌을 어떻게 조정하고 사건 선별 기준을 얼마나 정교하게 마련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다.

재판소원 도입은 한국 사법 구조에 처음 도입되는 새로운 견제 장치다. 사법 정의 강화와 사법 안정성 사이에서 제도가 어떤 방향으로 작동할지 법조계와 정치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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