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대우세계경영연구회가 주최한 세계경영 라운드테이블 포럼에서 강연이 열렸다. 박창욱 부회장의 초청으로 마련된 자리로, 청년 예비 창업가와 대우 퇴직 임원들을 대상으로 세계경영 2.0 시대의 창업을 주제로 경험과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연사는 대학 시절, 1990년대 중후반 유럽에 진출한 대우자동차와 대우전자 공장을 견학한 기억을 떠올렸다. 당시 공장 정문에 걸린 태극기와 대우 깃발은 한국의 국력이 지금보다 훨씬 낮던 시기에도 세계를 향해 도전하던 기업인의 상징이었다고 회고했다.
1970~90년대 한국 대기업 창업자들은 지금의 스타트업 창업가와는 비교하기 어려운 수준의 위험을 감수하며 사업에 뛰어들었다. 오늘날 같은 방식의 경영이 그대로 재현될 수는 없지만, 세계를 상대로 정면 승부를 걸었던 도전 정신만큼은 계승돼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제기됐다.
김우중은 단순한 재벌 경영인이 아니었다. 1967년 맨손으로 출발해 30여 년 만에 글로벌 대기업을 일군 그는 압축 성장의 상징이었다. 신문팔이 소년에서 세계 기업 총수로 이어진 경로는 오늘날 1인 유니콘, 솔로프레너가 그리는 서사와 닮아 있다.
AI가 200년간 유지돼 온 분업 시스템을 해체하는 지금, 초경량 조직으로 거대한 성과를 내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이 전환점에서 다시 호출돼야 할 이름이 바로 김우중이라는 주장이다.
첫째, 김우중은 현대적 의미의 솔로프레너에 가장 가까운 인물이었다. 연간 200일에 달하는 해외 출장, 이동 중 업무 처리, 생활의 거의 전부를 일에 쏟아붓는 방식은 오늘날의 허슬 문화보다도 앞서 있었다. 일론 머스크보다 수십 년 앞서 실행 중심의 경영을 실천한 셈이다.
둘째, 그는 본 글로벌 전략의 선구자였다. 1960년대 말 이미 싱가포르와 호주에 해외 거점을 세웠고, 중국과 동유럽, 미수교 국가까지 진출했다. 인터넷도 없는 시대에 직접 발로 뛰며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셋째, 세계경영의 핵심은 착취가 아닌 동반 성장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익을 현지와 공유하고, 장기적으로 현지 기업의 자립과 성장을 목표로 삼았다. 이는 단기 수익 중심의 해외 진출과는 결이 다른 접근이었다.
넷째, IMF 이후에도 그의 유산은 교육을 통해 이어졌다. 베트남에서 운영된 GYBM은 현지 언어와 문화, 경영 실무를 통합 교육하며 실전형 글로벌 인재를 양성했다. 이는 미완의 세계경영을 다음 세대에 넘기려는 시도였다.
다섯째, AI 시대는 세계경영 2.0을 요구하고 있다. 인구 감소와 성장 둔화라는 국내 환경과 달리, 해외 시장은 여전히 확장 가능성이 크다. 기술은 국경을 무력화했고, 과거 비행기로 오가며 쌓았던 세계경영은 이제 노트북 하나로 가능해졌다.
여섯째, 경로 의존성에서 벗어나는 것이 핵심 과제로 제시됐다. 과거의 성공 모델에 집착하는 순간 혁신은 멈춘다. 시스템의 사용자에 머물 것이 아니라, 직접 구축하는 빌더가 돼야 한다는 메시지다.
일곱째, 김우중은 생애 마지막까지 창업가였다. 실패와 해체 이후에도 세계경영을 포기하지 않았고, 끝까지 새로운 기회를 모색했다. 완성된 결과보다 매일의 성장 과정을 중시하는 태도가 강조됐다.
여덟째, 창업은 고통의 동굴로 들어가는 선택이라는 점이 분명히 제시됐다. 성공은 운이 아니라 확률의 문제이며, 반복된 도전 속에서 가능성이 축적된다는 인식이다.
김우중은 한 세대 이상 앞서 있었다. 그가 상상했던 환경은 이제 현실이 됐다. AI가 조직을 해체하고, 소수 인원이 거대한 가치를 창출하며, 국경의 의미가 사라지는 시대다. 과거에는 김우중 한 사람이 세계경영을 실천했지만, 지금은 누구나 그 역할을 맡을 수 있다.
조건은 분명하다. 집요하게 일하고, 세계를 무대로 삼으며, 장기적 시야로 고통을 감내할 각오가 있을 때만 가능하다. 지금은 일상의 기업가가 세계경영에 도전할 수 있는 시대라는 결론이다.
김우중의 세계경영, 한 세대 앞서간 원조 유니콘 창업자가 남긴 DNA, AI 시대 스타트업이 계승해야 할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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