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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리 점성촌, 잊혀가는 전통과 쇠락의 길

서울 성북구 돈암동에 위치한 ‘미아리 점성촌’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역술인 마을 중 하나로, 1960년대부터 형성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점성촌의 역사는 한국전쟁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 종로3가에 집단 거주하던 시각장애 점술가들이 전쟁 후 남산 근처로 이주하였다. 이후 1960년대 남산 지역의 도시정비로 인해 이들은 미아리로 정착하게 되었고, 1966년 역술인 이도병 씨가 이곳에 자리 잡으며 본격적으로 점성촌이 형성되었다.

1980년대의 전성기

1980년대에 미아리 점성촌은 전성기를 맞이했다. 당시 약 100여 개의 점집이 성행하였으며, 승진, 결혼, 이사 등 중요한 인생의 결정을 앞둔 사람들이 점을 보기 위해 미아리로 몰려들었다. 점집들은 대부분 시각장애 역술인들이 운영하였으며, 그들은 철저한 역학에 기반한 사주풀이로 운명을 해석하였다. 특히 사주팔자를 통해 한 사람의 운명을 풀어내는 방식이 이곳의 대표적인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

점성촌의 쇠락

하지만 1990년대 중반부터 점성촌은 점차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성북구는 미아리 점성촌을 전통 거리로 개발하려는 계획을 세웠으나, 기독교계의 반발로 인해 무산되었다. 또한, 21세기 들어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발달로 사주풀이를 온라인으로 쉽게 할 수 있게 되면서, 오랜 기간 점을 배운 시각장애 역술인들의 입지가 줄어들었다. 더불어 타로카드나 전화 운세 등 새로운 역학 트렌드가 등장하면서, 미아리 점성촌은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기 힘들어졌다.

시각장애 역술인들의 고군분투

미아리 점성촌의 점술가들은 대부분 시각장애인들로, 생계를 위해 역술을 직업으로 삼았다. 성북시각장애인복지관은 이들을 위해 역학, 마사지 등의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지원해 왔지만, 요즘 젊은 시각장애인들은 상대적으로 빠르게 개업할 수 있는 마사지업을 선호하고, 어려운 역학 공부에는 관심이 적다. 오랜 세월 동안 역학을 공부하고 점술을 배워온 1세대 역술인들은 후학이 끊길까 우려하고 있다.

현재의 미아리 점성촌

현재 미아리 점성촌에는 약 20여 개의 점집만 남아 있다. 과거의 명성을 잃고 쇠락의 길을 걷고 있지만, 여전히 이곳을 찾는 이들은 있다. 미아리 점성촌은 한국의 한과 눈물이 서린 역사적인 장소로서, 한때는 대한민국 운명을 좌우하던 곳으로 명성을 날렸으나 이제는 조용히 사라져 가는 운명에 처해 있다. 미아리 점성촌의 역술인들은 지금도 그들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으며, 성북구와 시각장애인 복지관의 지속적인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다.

미아리 점성촌의 전통을 이어가는 노력이 계속될지, 아니면 점차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지 그 미래는 불투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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