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밀가루 시장을 장악한 제분업계가 정부 물가안정 보조금까지 수령하면서 6년간 조직적으로 가격 담합을 벌인 사실이 드러났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사상 최대 규모인 6710억원대 과징금을 부과하고 관련 법인과 임직원을 무더기 검찰 고발했다.
공정위는 20일 대한제분, 사조동아원, CJ제일제당, 삼양사, 대선제분, 삼화제분, 한탑 등 7개 제분사가 2019년 11월부터 2025년 10월까지 밀가루 공급가격과 물량을 담합한 혐의로 시정명령과 총 6710억45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고 밝혔다.
이번 과징금은 국내 카르텔 사건 가운데 역대 최대 규모다. 종전 최대였던 2010년 LPG 담합 사건의 6689억원을 넘어섰다.
공정위 조사 결과 이들 업체는 국내 B2B 밀가루 시장의 87.7%를 점유한 상태에서 라면·과자·제빵업체 등에 공급하는 밀가루 가격을 총 24차례 공동 인상했다. 담합 대상 매출 규모는 약 5조6900억원에 달했다.
담합은 시장 점유율 상위 업체들이 주도했다. 2019년 사조동아원·대한제분·CJ제일제당·삼양사 임원들이 식당에서 만나 “과도한 경쟁을 자제하자”는 데 합의한 뒤 하위 업체들까지 참여시키며 전 제품군으로 확대했다.
이들은 공정위 조사를 피하기 위해 가격 인상 시점을 업체별로 며칠씩 차등 적용했고, 대표자 및 실무진이 총 55차례 만나 가격 인상 폭과 시기 등을 사전에 조율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국제 원맥 가격이 급등했던 2020~2022년에는 원가 상승분을 즉각 제품 가격에 반영해 중력분 평균 가격을 담합 이전 대비 최대 74%까지 끌어올렸다. 반면 2023년 이후 국제 원맥 가격이 안정되자 가격 인하 요구에는 공동 대응하며 최소 수준만 인하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조사됐다.
공정위는 이 과정에서 업체들이 정부 보조금까지 받으면서 담합을 지속한 점을 심각한 문제로 판단했다. 정부는 2022년 하반기 밀가루 가격 안정을 조건으로 총 471억원 규모의 보조금을 지급했지만, 업체들은 내부 메신저를 통해 지원금 지급 시점에 맞춰 가격 정책을 조정한 것으로 드러났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공정위 조사 결과를 토대로 보조금 환수 여부를 검토할 방침이다.
업체별 과징금은 사조동아원 1830억원, 대한제분 1792억원, CJ제일제당 1317억원, 삼양사 947억원, 대선제분 384억원, 한탑 242억원, 삼화제분 194억원 순으로 부과됐다.
공정위는 이번 사건에서 이례적으로 ‘가격 재결정 명령’도 함께 발동했다. 이에 따라 업체들은 의결서 수령 후 3개월 이내에 담합 이전 경쟁 수준을 반영해 가격을 다시 산정하고 이를 공정위에 보고해야 한다. 이후 3년간은 연 2회 가격 변경 내역도 제출해야 한다.
이 제도는 2006년 제분업계 담합 사건 이후 사실상 사문화됐지만 최근 제지업계 담합 사건에 이어 다시 적용됐다. 공정위는 시장가격을 직접 정상화해 소비자 부담을 낮추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남동일 공정위 부위원장은 “국민 생활과 밀접한 식료품 분야 담합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고 위법 행위가 확인되면 엄중히 제재할 것”이라며 “독과점 사업자의 중대한 불공정행위는 기업의 지속 가능성까지 위협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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