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63년의 기술이 남은 다리…600년을 버틴 ‘살곶이다리’서울 성동구 중랑천에 놓인 살곶이다리는 조선 전기에 축조된 대표적인 석교로, 오늘날까지 원형이 상당 부분 남아 있는 서울 최고(最古)의 돌다리 가운데 하나다. 조선의 수도 한양과 경기·영남 지역을 연결하는 핵심 교통로 역할을 하며 600년 넘게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살곶이다리의 건설은 세종 2년인 1420년 시작됐다. 당시 태종과 정종의 잦은 행차를 위해 공사가 추진됐으나 태종이 승하하면서 중단됐다. 이후 백성들의 통행 편의를 위해 성종 6년인 1475년 공사가 재개됐고, 성종 14년인 1483년 완공됐다. 당시에는 ‘제반교(濟盤橋)’라는 이름으로도 불렸으며, 평평한 반석을 걷는 듯한 견고한 구조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진다. 살곶이다리는 길이 약 76m, 폭 약 6m 규모로 조선 전기에 건설된 석교 가운데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다리 아래에는 모두 64개의 돌기둥이 설치됐으며, 물의 저항을 줄이기 위해 기둥을 마름모꼴로 다듬는 등 뛰어난 토목기술이 적용됐다. 또한 가운데 기둥 일부를 낮게 설계해 하중을 분산시키는 구조를 채택하는 등 당시 건축기술의 수준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로 평가받는다. 살곶이라는 지명은 과거 이 일대가 ‘살곶이벌’ 또는 ‘전곶평(箭串坪)’으로 불리던 데서 유래했다. 조선시대에는 국왕의 사냥터와 군사 훈련장, 말을 기르던 마장으로 활용됐으며, 왕이 능행을 떠날 때 반드시 지나던 길목이기도 했다. 다리는 조선 후기 흥선대원군의 경복궁 중건 과정에서 일부 석재가 사용되며 훼손됐고, 일제강점기에는 콘크리트로 덧씌워지는 등 원형이 일부 손상됐다. 이후 1970년대 보수·복원 작업을 거쳤으며, 추가 복원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2011년에는 보물 제1738호로 지정돼 국가문화유산으로 보호받고 있다. 살곶이다리는 단순한 교량을 넘어 조선 전기의 토목기술과 수도 한양의 교통체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600년의 세월 동안 한양의 역사와 함께해 온 이 돌다리는 오늘날에도 조선 건축기술의 우수성을 증명하는 상징적인 유산으로 남아 있다.
조선 63년의 기술이 남은 다리…600년을 버틴 ‘살곶이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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