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에는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개념이 있다. 미국 경제학자 Garrett Hardin이 제시한 이 이론은, 개인의 합리적 선택이 오히려 사회 전체의 공유자원을 파괴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설명한다. 공동 소유의 풀밭에서 각자가 이익을 극대화하려 소의 수를 늘리면, 결국 풀밭은 황폐해지고 공동체의 자원은 붕괴된다는 비유가 대표적이다. 이 개념은 전통적으로 환경과 자원 문제에 적용돼 왔지만, 최근 한국 사회의 공적 영역에서도 반복적으로 관찰되고 있다.
2025년 한국 사회의 핵심 이슈 가운데 하나는 국민연금 개혁이었다. 당시 논의의 출발점은 국민연금 기금이 2050년대 중반 고갈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여야는 극심한 정치적 대립 속에서도 ‘더 내고 더 받는’ 구조를 골자로 한 개혁안에 합의했다. 보험료율을 2026년부터 매년 0.5%포인트씩 인상해 2033년까지 13%로 끌어올리고, 소득대체율을 41.5%에서 43%로 상향하는 내용이었다. 이로써 기금 고갈 시점은 통계상 2060년대 중반으로 연장됐다.
문제는 국민연금의 성격에 있다. 국민연금은 준조세적 제도로, 대다수 국민이 사실상 강제 가입 대상이다. 기금 운용은 국민연금공단이 맡아 투자 수익을 추구한다. 이런 구조 속에서 2025년 말 원·달러 환율이 1,480원대까지 급등하자, 정부는 기획재정부·보건복지부·한국은행·국민연금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가동해 환율 안정 방안을 논의했다. 정부는 국민연금의 직접적 환율 방어 개입을 부인했지만, 시장은 이를 다르게 해석했다.
국민연금은 해외투자를 통해 상당한 외환을 보유하고 있다. 국민연금과 한국은행 간 외환스와프 계약이 연장되거나 규모가 확대될 경우, 결과적으로 국민연금이 보유한 외환은 환율 안정에 기여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이는 시중은행의 달러 유동성 부족을 보완하는 방식의 간접 개입이다. 환율이 상승해도 국민연금은 원화로 급여를 지급할 수 있지만, 외환을 소진한 만큼 실질 자산은 감소한다.
정부 각 부처의 시각에서 국가 예산은 대표적인 공유자원이다. 국회와 감사기관의 감시가 존재하지만, 일반 국민이 세금의 구체적 사용 내역을 체감하기는 쉽지 않다. 이 때문에 각 부처는 매년 예산 확보 경쟁에 나선다. 국민연금 역시 정부 부처 입장에서는 공유자원처럼 인식될 소지가 있다. 준조세적 성격을 띠는 데다, 투자·관리·운용 전반에 대한 권한이 정부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계적으로 2060년대 중반 고갈이 예정된 자원을 ‘공유지’처럼 다루는 인식은 장기적으로 심각한 위험을 내포한다.
세금으로 조성된 국가 예산과 국민연금은 더 이상 무차별적으로 소비 가능한 공유자원으로 취급돼서는 안 된다. 국회와 시민사회의 감시, 보다 정교한 법률적 통제 장치, 그리고 장기적 책임성을 전제로 한 제도적 재설계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공유지의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공적자원의 경계를 분명히 하고, 그 사용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강화해야 한다.












댓글 남기기